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이지리아 내전 (문단 편집) == 나이지리아의 독립, 그리고 혼란 == 1900년경 [[종교]]와 [[문화]], 배경이 저마다 다른 [[서아프리카|서부 아프리카]]의 지역들이 [[영국]]의 식민 정책 하에 나이지리아로 통합되었다. 이때 남부의 [[이보족]]과 [[요루바]]족은 영국으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식민지]] 통치에 협조한 덕에 지원을 받아 더욱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을 믿었던 [[무슬림]] [[하우사족]]은 빈곤에 시달리면서 민족, 지역간 갈등이 격화되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탈식민지화]]의 바람이 불면서 나이지리아도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역시 영국이 다양한 민족들과 지역들을 적당히 통합하면서 생겨났기 때문에 많은 아프리카 독립국처럼 지역, 종교, 민족 갈등에 빠지게 되었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갈등 구조에 초대 [[대통령]] [[은남디 아지키웨]](Nnamdi Azikiwe, 1904-1996)가 이끌던 민간 정부는 영 힘을 쓰질 못했다. 결국 1966년 1월 쿠마 카두나 느제오우(Chukwuma Kaduna Nzeogwu, 1937~1967) [[소령]]이 지휘했던 [[군부]] 소장파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나이지리아 초대 총리 겸 당시 총리이던 아부바카르 타파와 발레와(Abubakar Tafawa Balewa)를 비롯한 정치가 각료들을 살해했는데 청년장교들의 [[군사반란]]을 [[토벌]]한 남부 이보족 출신의 [[존슨 아그이 이론시]](Johnson Aguiyi Ironsi)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지키웨 대통령을 축출하고[* 그래도 쿠데타 반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진 않았다. 여담으로 은남디 아지키웨는 쿠데타로 실권한 이후에도 군부 정권 치하에서도 계속 생존해있었다가 1996년 병사했다.] [[군사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대통령이 된 이론시는 독립 초 [[연방제]]로 유지되고 있었던 나이지리아를 강압적인 중앙집권으로 제어, 통제하려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여러 [[민족]] 집단들, 특히 하우사족이 차지하고 있던 북부의 반발을 키웠고 같은 해 결국 역쿠데타를 일으켜 이론시는 반대파의 총에 맞아 암살당하고 말았다. || [[파일:uGhTmHG.jpg]] || || 이론시의 후임자인 [[야쿠부 고원]] || 한편 이론시가 암살당하자 나이지리아 [[군사 정권]] 내부에서도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그 결과 북부 하우사 부족 출신 [[야쿠부 고원]]이 역쿠데타를 진압하여 여러 경쟁자들을 억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 고원 대통령은 나이지리아의 불안정한 정국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부족 대표들과 지역 대표들을 모아 전국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려 했으나 같은 해 벌어진 [[이그보족|이보족]]과 하우사족 간 유혈 충돌로 회의는 결국 취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